인류의 출현 - 우주 안에 작은 인간의 존재 받아들이기 #2
인류의 출현
인류의 출현은 지금으로부터 350만 년 전쯤 아프리카 남부에 거주한 유사인류 즉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등장을 시작으로 본다. 두개골의 크기가 고릴라보다 크고 직립으로 걸으며 조잡한 도구를 사용하였다. 초기인류는 점점 똑똑해지며 불을 사용하는 법을 알게되어 음식을 익혀먹었고 추위를 견딜 수 있었다. 사냥과 채집을 통해 식량을 조달하였으며 시체를 매장하는 풍습을 지녔다. 233만년~140만년전에 살았던 인류인 호모 하빌리스는 석기를 사용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더욱 발달한 뗀석기를 만들었다. 돌과 동물의 뼈를 이용하여 만든 도구로 사냥을 하기도 했으며 가죽과 뼈를 발라내어 먹기 시작하였다. '똑바로 선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에렉투스는 불을 여러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이들은 불을 활용하여 맹수들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불에 딴 고기가 연하다는 것을 터득했고 질병으로부터 어구 멀어질 수 있었다.
200만년 전 전에 살던 호모 에렉투스는 최초로 아프리카지역을 벗어나 세계 각 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80만년 전 발견된 네인데르탈인은 상당히 정교한 기술력을 갖췄다. 음식을 저장하고 동굴과 난로를 만들었으며, 담요와 유사하게 직조하여 옷을 만들어 입었다. 네안데르탈인의 뇌용량은 현대인보다 커서 얼굴이 크고 상안부가 앞으로 나와 있다. 그들은 동굴 속에서 살았으며 자신의 동료도 죽였다. 부상을 당한 자들을 돌보아줬으며 이따금 죽은 자를 매장하곤 했다. 그리고 30만년 전부터 현대까지의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로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고도로 발달한 두뇌를 지니고 있으며 자기 자신을 통합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주체가 된다. 직립 보행을 자유롭게 하며 팔을 이용하여 정교한 도구를 만들줄 안다. 남극을 제외한 지구 모든 대륙에 살고있으며 정교한 언어를 통해 사회적 조직화를 이루었다.
45억년의 지구 역사를 하루 24시간으로 압축한다면 인류가 존재한 시간은 1분7초 정도로 0.08%가량의 시간을 점유했다. 지구 일대기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이 시간은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류에게는 상당히 긴 시간이다. 짧은 생애주기를 갖는 인간은 DNA 개체차원에서의 종족번식 속성으로 인해 다세대에 걸쳐서 진화했다. 진화가 결코 진보적인 방향으로 간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가 진화하면 떠오르는 가장 첫번째 이미지는 유인원에서 사람으로 점차적으로 변해가는 사진일 것이다. 그러나 진화는 이처럼 진보적이고 선형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방향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다. 그 중 생존하는 객체만이 후세에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할 수 있고, 나머지는 죽는다. 진화는 대게 그런식이다.
진화는 큰 뜻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합리적으로 변모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화의 과정은 수십, 수백세대를 거쳐서 일어나는 매우 긴 여정이다. 이 여정에서 환경에 부합하는 특성만이 솎아내지고 그렇지 않은 특성은 사라진다. 또한 진화는 이전의 진화과정 위에 한 꺼풀씩 누적되어 일어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진화의 결과값은 종속하는 환경에 매우 잘 부합하지는 않는다. 마치 해지고 찢어진 부분을 더 단단한 천으로 한풀씩 덧데어 꿰매어 입은 누더기 옷과 같은 형태이다. '클루지' 저자의 비유를 빌리면, 마치 3중의 중첩된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핵융합 발전소와 같다. 아날로그 형태로 돌아가는 코어의 시스템을 그보다 나은 시스템이 운영하고 있고, 그보다 나은 시스템이 2중 시스템을 총 관리하고 있다. 만약 설비를 잠깐 멈추고 시스템을 개선한다면, 똑똑한 과학자들은 완전히 새로운 최첨단 고효율 시스템을 일괄로 설치할 것이다. 그러나 핵 발전소 설비는 절데 꺼질 수 없기에 불가능하다. 이러한 형태의 진화의 결과가 지금 우리 모습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그래저래 살아갈 정도의 누더기 옷은 갖췄지만, 이 환경에서 큰 성취를 거둘 수 있을 정도로 합리적이고 적합하진 않다. 이는 우리 인체의 물리적인 외형뿐 아니라 마인드에도 영향을 끼친다. 가령 스스로 경험으로 익혔던 관념들을 부정당하는 발언을 들었을 때 적대감이 가장 먼저 드는 것은, 과거 혹독한 환경에서 우리의 조상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현시대에서는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감정이 우리가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는 내재적 의식이라는 걸 깨달을 정도로 똑똑하지 않다. 수세기를 걸쳐 덧데고 덧덴 누더기 옷의 가장 안쪽에는 어떤색의 옷을 입고 있었는지는 잊어먹었다. 따라서 우리는 연습해야한다. 내가 지금 갖고있는 삶의 태도가 이 세상과 합치하는지, 아니면 구시대의 퇴보적 본능인지, 가장 안쪽의 누더기 옷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