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작가, MZ가 세상을 대하는 가장 합리적인 태도

MZ, 세상은 왜 '공정'하지 않을까? - 혼돈의 바다에서 집 짓기 본문

집필中 [MZ로 세상 대하는 가장 합리적인 태도]

MZ, 세상은 왜 '공정'하지 않을까? - 혼돈의 바다에서 집 짓기

철작가 2024. 1. 14. 17:32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제 대학교를 갔다. 3.5점 이상의 학점을 유지하고 나름의 스펙을 쌓아 대기업에 취직했다. 이제 적금을 들어 돈을 모으고 50% 이하의 융자금을 껴서 집을 사고 결혼하여 천천히 갚으면 20년 뒤에는 집이 생길 것이다. 그럼 20살쯤 된 나의 아이도 4년제 대학교를 가고 동일한 과정을 밟을 것이다. 사회가 만든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일은 비교적 평온하다. 마치 공략집을 보고 하는 RPG 게임과도 같이 옳은 길이라는 모종의 확신을 갖게 된다. 반대로 커리큘럼을 따라가지 않는 길에는 가로등이 없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체육인, 대학교 진학 없이 소형 카페를 차린 젊은이들에게 투하되는 뭇매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창의성의 진보를 회귀시키고 커리큘럼을 지키는 자들에게 소속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하다.

 

 그러나 나이가 먹을수록 느끼는 사실은, 보장된 줄 알았던 결과가 과정에 상응하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완벽한 줄 알았던 제도는 시대의 변화 앞에서 허술하게 무너졌다. 노력이 숭고한 가치로 여겨지지만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현재 MZ세대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공정'인 것도 이러한 부조리함에서 파생된 것이다. 사회적 제도와 원칙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완벽하지 않다. 능력주의적 관료사회는 세상을 공정하게 보이는데 일조했지만 동시에 더 많은 노동계급 확장시켰고 계급 간 사다리를 걷어차왔다. 농업혁명 이후 인구 증폭을 이뤘지만 정작 개인의 노동시간은 곱절로 늘어났다. 1차 산업혁명으로 국가적 차원의 번영을 이뤘지만 동시에 더 많은 노동자들과 아이들을 빈곤으로 몰아넣었다. 왜 우리가 합리적으로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늘 100% 작동되지 않을까? 우리가 만들어 놓은 질서들은 왜 영원하지 못할까? 

 

 세상은 원래 무질서하다. 태양계에서 초기 지구가 대기권을 갖출 때부터 존재했던 몇 가지 절대 물리법칙 외에는 모든 게 무질서하다. '이는 열역학 2법칙 : 고립계의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에서도 빗대어 볼 수 있다. 우리의 경우에 고립계는 태양계로(더 구체적으로는 지구) 정의할 수 있고, 엔트로피는 무질서도를 뜻한다. 엔트로피가 낮다는 말은 질서가 갖춰진 상태를 뜻하며, 반대로 엔트로피가 높아진다는 말은 무질서함을 가리킨다. 열역학 2법칙에 따라 자연에서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좌표가 균일한 공간적 평형의 상태로 귀결된다. 이처럼 무질서함이 자연의 기본 상태값이다. 인위적으로 갖추어 놓은 질서는 늘 무질서함으로 돌아가려는 자연의 압력을 받는다. 

 

 인간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한다. 이러한 두려움은 생존의 관점에서 자연스럽다. 그렇기에 미래를 예측하고 통제하고자 혼돈의 세상에 나름의 질서를 수세기 동안 만들어왔다. 규칙을 만들고 법원과 정부를 설립하여 사회적인 조화를 유지하고자 했다. 이렇게 형성된 체제는 개인과 사회 전반의 걸쳐 안정적은 토대가 되어 우리의 삶의 방식을 고착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질서는 혼돈의 세상 위에 인위적으로 세워져 있다. 시간이 가면서 일부 질서들을 낡아 무질서함으로 돌아가고, 인간은 새로운 질서를 재건하기를 반복한다.

 

 새로이 형성되는 질서는 간혹 과거의 것을 완전히 부정하기도 한다. 책 '사피엔스'의 인용을 빌려서 기원전 1776년 함무라비 법전과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비교해 본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현대 미국인들의 협력의 토대로 기능하고 있다. 기원전 1776년 바빌론은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였다. 메소포타미아 대부분을 차지했던 바빌론의 당시 왕이 함무라비이다. 함무라비는 당시 정의로운 왕의 대명사였으며, 함무라비 법전은 고대인들의 절대적인 사회질서를 반영한다. 이 문서의 첫머리는 메소포타미아의 주신인 아누, 엔릴, 마르두크 신이 함무라비에게 "정의가 지상에 넓리 퍼지게"하는 임무를 주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다음에 이러이러한 일의 판결을 이러이러하다는 식으로 300건의 판례를 나열한다. 몇 가지의 판결문을 보자.

209 : 만일 귀족 남자가 귀족 여성을 때려서 그녀의 아기가 유산되었다면 태아에 대한 보상으로 은 10세겔을 저울에 달아 지불해야 한다.

210 : 만일 맞은 여성이 사망한다면 그 남자의 딸을 죽여야 한다.

211 : 만일 그가 임신 중인 평민 여성을 때려서 유산시킨다면 은 5세겔을 달아 주어야 한다.

212 : 만약 그 여성이 사망한다면 그는 은 30세겔을 저울에 달아 주어야 한다.

213 : 만일 귀족의 여성 노예를 때려서 유산시킨다면 은 2세겔을 주어야 한다.

214 : 만약 그 여성 노예가 죽는다면 은 20세겔을 주어야 한다. 이것이 당사 바빌론의 보편적이고 정의로운 사회적 질서이다. 이 원칙들은 신들이 읊어준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로부터 3500년 후 북미에 있는 영국 식민지에서도 보편적이며 영원한 정의의 원칙을 선언했는데, 이들도 함무라비 법전처럼 신이 내려준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 신이 불러준 정의는 바빌론의 신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이렇게 단언한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가 자명하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이들은 창조주에게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포함하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부여받았다."

 이들의 후손들은 200년이 넘는 지금까지 이것을 베끼고 암송해 왔다. 독립선언문은 현재 미국인들을 결속하는 정신적 근간이 되어있다. 

 

 이 두 문서는 둘 다 스스로를 보편적이고 영원한 정의라고 주장한다. 둘 다 당 시대의 최대 규모의 국가 번영을 주도했던 정신적 기반이었다. 물론 우리는 미국의 독립선언문이 보편적 진리에 부합한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당연히 함무라비가 옳고 우리가 틀렸다고 반문할 것이다. 모두가 틀렸다. 평등이건 위계질서건 보편적이고 변치 않는 정의와 질서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며, 이러한 원리에 객관적 타당성은 없다. 이러한 비교로 우리는 인위적으로 세워진 질서가 얼마나 조악한지 알 수 있다. 보편적인 정의와 질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존속적 가치가 있다면, 조직에 귀속된 피통치자들이 이러한 조악한 정의를 보편적이라고 믿게 함으로써 생기는 결속력으로 수월한 통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나름의 규칙들을 조합하여 조악한 원칙을 세워나간다. 이러한 원칙은 초월적 존재(신)의 부름을 가장하여 당 시대인들의 정신을 결속시킨다. 시대가 변하여 낡은 원칙들이 보편적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음에도 우리는 당 시대의 원칙을 또 믿고 살아간다. 이러한 상황은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지만 불가결하기도 하다. 당 시대 아우르는 정의가 있다고 믿음으로써 우리는 일면식도 없는 지구 반대편의 누구를 만나면서도 최소한의 인류애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같은 문화권의 사람들과 공감대와 소속감 속에서 막연한 불안감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인위적 질서 그 밖에는 모든 게 혼돈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혼돈하다. 그 안에서 인간을 포함한 무엇이던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도 혼돈은 이를 무질서함으로 돌아가게끔 작용한다.

 

 바다 안에 바닷게는 변화무쌍한 파도의 바닷속에서 굳건한 집을 짓기로 유명하지만, 게가 짓는 어떠한 집도 혼돈의 바다 안에서 결국 시간문제인 것과 같다. 우리 사회는 바다 안에 모래와 해초를 이용하 견고한 궁궐을 만든 바닷게 집단과 같다. 이 궁궐은 매우 견고해 보여서 영원토록 나를 지켜줄 것 같지만, 혼돈의 바다는 너무도 작은 이 존재에 관심이 없다. 바다 안에서 더욱 굳건한 집을 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보다, 모든 집이 무너진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껍데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믿고 있는 사회적 커리큘럼이, 또는 불변할 것 같은 원칙들도 어떠한 타당성을 갖지 못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하면 원초적인 불안감과 허무함이 느껴지겠지만 이내 주변의 시선에 의식하지 않고 독립적인 삶을 향유할 수 있다. '공정'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가로등이 없는 넓을 바닷속을 향유하며 가보지 않은 길에서 예상치 못한 행복을 찾을 수도 있다.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까지 받아들여야 혼돈을 이해한 것이다.

 

#바닷속 #모래집